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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뉴진하이
2025. 2. 26. 12:39
인천광역시(仁川廣域市, 영어: Incheon Metropolitan City)는 대한민국 중서부에 있는 광역시이다. 서쪽으로 서해, 동쪽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경기도 부천시, 남동쪽으로 시흥시, 북쪽으로 김포시와 접한다.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제조업과 물류와 산업이 발달하였다. 시청 소재지는 남동구 구월동이고, 행정 구역은 8구 2군이다. 2003년 인천광역시경제자유구역청이 개청되어 송도 · 청라 · 영종 지구를 관할한다.[1]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인천광역시의 역사입니다.
인천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문학산, 계양산 등에서 발견된 각종 석기류들로 미루어 신석기 시대인 것으로 추정되며, 학익, 주안, 문학 등에 분포된 고인돌은 청동기에 부족세력이 거주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삼국시대
인천은 원삼국시대에 미추홀(彌鄒忽)로 불렸으며 비류 십제의 도읍지이기도 하였다. 미추홀이란 이름은 물가에 있는 지역을 뜻하는 뭇골, 또는 거친 들판이 있는 지역을 뜻하는 맷골의 음차라는 해석이 있다. 십제의 온조가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의 영토였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면서 남하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이 일대에 매소홀현(買召忽縣)을 설치하였다. 6세기 중반 신라의 진흥왕이 점령하여 신라에 편입되어, 10세기까지 약 400년간 신라의 영토로 활약했다. 삼국통일 이후인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됐다.
고려시대
소성현은 고려 때에는 수주(樹州)에 속했다가 1105년(숙종 10년), 문종의 왕비이자 순종, 선종, 숙종,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한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생산한 인예태후 이씨(仁睿太后 李氏)의 외향이라 하여 경사의 근원지를 뜻하는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7대 국왕 인종(仁宗) 역시 어머니 문경태후 이씨의 친정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재승격시켰으며, 1390년(공양왕 2년), 칠대어향(七代御鄕)으로 경원부(慶源府)로 개칭되었는데, 문종조에서 인종조까지 7대에 이르는 동안 인주이씨 집안에서 다섯 왕비(인예왕후, 인경현비, 인절현비, 사숙왕후, 순덕왕후)가 나왔고, 다섯 임금(순종, 선종, 헌종, 숙종, 인종)이 인주이씨 왕비의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13세기에 이르러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입하자, 1232년(고려 고종 19년) 고려 정부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쟁하였다. 이 시기 고려는 강화도에서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 혼란을 극복하겠다는 마음으로 팔만대장경을 편찬하였다. 강화는 강도(江都)로 불리며 1270년(고려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고려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개경 환도 이후 발생한 삼별초의 난 시기에는 삼별초가 안남도호부를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강화도에 강화 고려궁지이 세워지자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는데, 왕궁과 성곽이 들어서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지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강화도의 면적은 크게 확장되었으며 본래 두 개의 섬이었던 강화도는 하나의 섬이 되었다.
조선시대
1392년(조선 태조 1년) 인주로 격하된 후, 1413년(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지는 도호부 이하의 군·현 명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함으로, "인천(仁川)"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 날(1413년 10월 15일)에서 유래하여 매년 10월 15일을 '인천 시민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1460년(세조 6년) 세종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의 외향이라 하여 인천 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이 발생하고 이듬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약 내용에 의해 부산, 원산과 함께 개항이 결정되었으며, 1883년(고종 20년) 제물포 개항으로 제물포에 인천감리서가 설치되면서 사실상의 읍치가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이전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갑오개혁의 지방관제 개편으로 전국을 23부로 개편하여 인천부(仁川府)가 되었다. 1896년(건양 원년) 다시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다. 지금의 학익동, 문학동, 관교동, 선학동 일대를 포괄하던 인천부 부내면은 1906년 인천부 구읍면으로 개칭되었고, 부내면의 이름은 당시 다소면의 일부였던 개항장(현재의 인천광역시 중구)으로 넘어갔다.
행정구역의 변천
인천광역시의 행정 구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96년: 인천부가 설치되었다.
1899년 9월 18일: 한반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철도가 인천에서부터 개통되었다.
1906년: 다소면의 일부였던 개항장 일대가 부내면으로, 관교동 일대를 비롯한 종래의 부내면이 '구읍면'으로 각각 개칭되었고, 이포면이 남양군으로 이관되었다.
1910년 10월 1일: 일제는 대한제국에 대한 1910년 8월 29일의 강제합병에 따른 인천부의 새 관할구역을 종래의 인천부 일원으로 유지한다는 총독부령을 발표했다.[2]
1914년 4월 1일: 인천부를 분할하여, 항구 주변의 도심지만을 인천부로 지정하고, 인천부의 나머지 면과 부평군을 부천군으로 개편하였다.[3]
1936년 10월 1일: 부천군 다주면(도화리 일원, 장의리 일원, 용정리 일원, 사충리 일원, 간석리 일부)과 문학면 일부(옥련리 일원, 학익리 일원, 관교리 일부, 승기리 일부)를 인천부에 재편입하였다. 이때 간석리, 관교리, 승기리 각 일부는 주안정으로 편입되어 현재에도 주안동의 일부를 구성한다.
1940년 4월 1일: 부천군 문학면, 남동면, 부내면, 서곶면을 인천부에 (재)편입하였다.[4]
1945년 10월 10일: 인천부를 제물포시로 개칭하였다.
1945년 10월 27일: 제물포시를 인천부로 환원하였다.
1946년 1월 1일: 일본식 정(町)명을 개정하였다.[5]
1949년 8월 15일: 인천부를 인천시로 개칭하였다.[6]
1950년 7월 4일: 한국전쟁 발발 9일 뒤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하였다.
1963년 1월 1일: 부천군 영종면 운남리 작약도가 인천시로 편입되었다.[7]
1968년 1월 1일: 중구, 동구, 남구, 북구를 설치하였다.[8]
1981년 7월 1일: 경기도 인천시 일원을 관할로 인천직할시가 설치되었다.[9]
1988년 1월 1일: 북구에서 서구를, 남구에서 남동구를 각각 분리·설치하였다.[10]
1989년 1월 1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 북구에, 경기도 옹진군 영종면과 용유면이 중구에 각각 편입되었다.[11]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로 개칭하였다.[12]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에 경기도 옹진군, 강화군과 김포군 검단면(서구로 편입)이 편입되었고, 북구를 부평구와 계양구로, 남구에서 연수구를 각각 분리·설치하였다.[13]
2018년 7월 1일: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하였다.
2024년 1월: 인천광역시의 주민등록인구가 300만명을 돌파하였다.
2026년 7월 1일: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가 폐지되고 제물포구, 영종구, 검단구가 신설될 예정이다.
인천이 최초인 것들
철도
한국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이다. 1899년 9월 18일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 33㎞의 구간이 개통되었다. 당시 개통된 역은 인천 - 축현 - 우각동 - 부평 - 소사 - 오류동 - 노량진의 7개 역이었다.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개통되었고 7월 7일 서울역까지 연결되어 서울-인천간 철도 교통이 완성되었다. 경인선은 개통초기 하루 2회 왕복하였으나 전 구간이 개통되면서 하루 5회 왕복 운행되었다.
통신
한국 최초의 근대적 통신인 전신은 인천의 제물포에 처음 도입되었는데, 청나라가 조계지와 본국간의 연락을 위해 전신을 설치하였다. 한편, 한반도에 전화가 처음 들어온 것은 청나라에 파견된 유학생 상운이 1882년 3월 제물포항으로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이 시초이나, 실제 통화를 위해 개설된 것은 1898년 무렵으로 보인다. 가장 오래된 통화 기록은 1898년 1월 28일 인천 감리가 외아문(外衙門)에 “오후 3시에 영국 범선 3척이 입항할 것”이라고 보고한 것이다. 일반인이 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02년으로 일본이 서울-인천 간 전화를 불법으로 가설하려하자 조선이 서둘러 사업을 시작하였다.
요리
인천에서 시작된 대표적인 요리로는 짜장면과 짬뽕, 쫄면 등의 면식류를 들 수 있다. 화교들에 의해 전해진 짜장면은 중국 요리 작장면에서 지금의 달짝지근하고 짭짤한 장에 비벼 먹는 면 요리로 발전하였으며, 짬뽕은 일본 나가사키에 정착한 화교들에 의해 들어와 점점 우리 입맛에 맞게 변하며 매콤하고 시원한 국물을 가진 짬뽕으로 발전했다. 쫄면은 1970년 중구의 광신제면이라는 제면 업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청소년 할인
2003년 6월 18일 대한민국 최초로 학생할인을 청소년 할인으로 처음 시행하였으며 인천광역시를 기점으로 전국에서 점점 학생할인에서 청소년할인으로 바꾸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고 덕분에 학생/비학생 구분없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모든 혜택을 누리고 할 수 있도록 하는 시발점 역할을 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대중교통을 특정으로 한 것이 아쉽지만 이 시작으로 인해서 지금의 모든 청소년들이 혜택을 받고 누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발점을 인천광역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리
서쪽으로 황해와 마주하고 있으며, 해안 매립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잔구형산맥이 해안까지 발달해 있고, 시가지를 중심으로 300m 내외의 잔구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진 반도형 지괴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부평구는 원적산, 광학산(201m), 거마산(205m)을 경계로 인천 도심과 시가지가 분리되고, 연수구는 문학산(213m)을 경계로 인천 도심과 시가지가 구분되며, 계양구는 계양산(395m), 천마산(285m)을 경계로 인천 도심과 별개의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계양구와 부평구는 이처럼 구분되어 있어서 북인천이라고 통칭한다. 서구도 마찬가지로 동으로는 계양산 등의 산맥이 있고 남쪽의 동인천 지역으로는 2016년 인천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가좌동 지역을 제외하면 왕래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서인천이라고 부른다. 동구와 중구(영종도 제외)는 원도심으로,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서 동인천이라고 부르며, 나머지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는 남인천이라고 부르나 상기한 산맥의 존재로 서, 북, 동인천에 비해 그리 잘 불리지는 않는다. 강화군은 행정구역상 인천에 속하지만, 강화대교가 연결된 동쪽의 김포시와 밀접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방위를 기준으로 육지의 경우, 북으로 경기도 김포시, 동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부천시 전역, 동남쪽으로 시흥시와 접하고 있다. 해상은 남쪽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서산시, 태안군과 접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북방한계선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룡연군, 옹진군(황해남도), 강령군, 청단군, 연안군, 배천군 및 개성시 개풍구역과 맞닿아 있다. 해수 권역이 광역시 중 가장 넓다.
황해남도 옹진군 경기도 김포시 서울특별시 강서구
서해 경기도 부천시
인천광역시
서해 서해 경기도 시흥시
면적
인천은 1981년 직할시 승격 당시 면적은 201.21km2였다. 1989년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30.9km2)과 옹진군 영종면ㆍ용유면(72.0km2) 편입으로 면적이 310.83km2가 되었다. 1995년 강화군(401.3km2), 옹진군(163.6km2), 김포군 검단면(42.2km2)의 통합으로 면적이 955km2가 되었다. 이후에는 공유수면 매립 등으로 면적이 넓어져 2022년 1월 31일 기준으로 1,066.46 km2에 이르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전체 1,066.46km2 중에 강화군이 411.42km2, 옹진군이 172.94km2고, 중구의 섬지역이 125.82 km2(영종도, 무의도 등)를 차지해, 인천의 전체 면적 중 인천 본토는 356.27km2, 섬 지역은 710.19 km2로, 섬 지역이 육지 지역의 약 2배다.
지질
선캄브리아기 중원생대 스테노스기~신원생대 토노스기의 퇴적암 지층 백령층군 남포리층으로 구성된 옹진 백령도 남포리 습곡구조
이 부분의 본문은 인천광역시의 지질입니다.
기후
인천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14](쾨펜의 기후 구분 Dwa)[15]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해 5도와 같이 온대 하우 기후(Cwa)에 속하는 곳도 있다. 해안도시이지만 낮은 수심의 경기만 깊숙이 위치해 있어 기온과 강수량은 내륙 지방과 비슷하다. 7~8월에 기온이 가장 높고 강수량이 높다. 인천은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동해 연안의 도시보다 겨울철 기온이 낮다. 강수량은 한국 중부의 타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옹진 섬 지역은 인천 육지보다 바다의 영향으로 따뜻한 편이다. 그리고 강수량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적은 지역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